생후 두 달만에 안락사한 백구 삼남매… 유기동물보호소의 역설

0
보호소는 동물을 살리기도 하지만, 안락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한 초등학교에 동물보호 교육을 다녀왔다. 교육 대상은 5, 6학년 학생들이었는데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모습에 기쁘고 뿌듯했다. 특히 그중에는 웬만한 어른들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관련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아이들도 몇몇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 중 한 아이가 번쩍 손을 들더니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길을 다니다 보면 고양이들은 많이 볼 수 있는데 왜 강아지는 없어요?”

이는 유기동물과 길고양이에 대한 정책이 각각 다르기 때문인데, 12살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이런 의문을 가졌다는 게 기특하게 느껴졌다. 동물보호법은 유실∙유기동물에 민원이 들어올 경우 포획 후 지자체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일정 기간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동시에 지자체는 동물의 원소유자나 새로운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사진과 정보를 동물보호관리시스템(animal.go.kr)에 게시해야 한다. 반면 원래부터 길에서 태어나 자생적으로 사는 길고양이는 원소유자가 없고, 입양처를 찾을 확률도 매우 낮기 때문에 보호소 대신 중성화 수술 후 제자리 방사하는 TNR 대상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설명해주니 아이는 또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보호소에서도 갈 데를 찾지 못하는 동물은 어떡해요?”

“시나 구에서 운영하는 보호소는 신고가 들어오는 모든 유기동물을 데리고 와서 보호해야 하는데, 동물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동물을 보호할 공간이 없어지면 원래 있던 동물은 안락사하기도 해요.”

‘안락사’라는 말이 나오자 아이들의 안타까운 탄식과 놀라는 목소리로 교실이 가득 찼다. 아이들은 보호소에서 동물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죽이기도 한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하기야 나 역시 보호소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를 생각하면, 이를 처음 알게 된 그날처럼 아직도 코끝이 시큰거리니 아이들에게는 훨씬 더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는 많은 이들에게 아픔으로 다가온다.

안락사라는 이름 뒤에는 비극적인 현실이 감춰져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두에게 안락할 수 없는 안락사의 현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정말 슬픈 사진을 봤다. 사진 속에는 2개월 된 하얀 강아지가 깜찍한 모자와 스카프를 하고 꽃이 가득한 배경을 뒤로한 채 순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여운 모습에 절로 미소를 띠다가 사진 아래 작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종료(안락사)”

꽃단장을 한 사진 속 강아지는 포항시보호소에 들어온 백구 삼 남매 중 하나였다. 보호소 직원들은 법적 공고 기간인 열흘 안에 가족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강아지들을 치장했고 여러모로 신경 써서 찍은 사진을 유기동물 공고 사이트에 게시했다. 그러나 간절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호소에 들어온 세 마리 강아지는 가족을 찾지 못했고 결국 모두 안락사되었다. 세상의 빛을 본지 이제 겨우 두 달, 너무나도 짧았던 시간 동안 백구 삼 남매에게 이 세상은 어떤 곳으로 기억됐을까.

단지 버려졌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동물만큼은 아니겠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안락사는 상처를 남긴다. 백구 삼 남매를 비롯해 보호소에 들어오는 동물들을 하나하나 씻기고 꾸며서 입양 공고용 사진을 찍는 직원들 역시 안락사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보호소 직원을 다룬 기사 인터뷰를 읽다가 “먹이고 씻기는 것도 우리고, 안락사시키려 데려가는 것도 우리”라는 문장에서 그들의 괴로움이 절실하게 느껴져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지자체 보호소에서 동물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방치 학대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흔히들 동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직원을 잘 선별해 보호소에 채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의 유기동물 보호소는 동물에게 진심을 다하는 이들이 버텨내기 어려운 장소다. 마음을 다해 보호 동물을 보살피고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쏟아도 모든 동물이 갈 곳을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으로 돌보던 동물의 서러운 마지막을 숱하게 지켜봐야 했던 그 심정을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보호소에서의 ‘안락사’는 동물에게 평온을 주기 위한 방법이 아니다. 충분히 건강하고 생에 대한 의지가 있는 동물을 인간들만의 현실적 이유로 죽게 하는 것을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조금이라도 위안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태어난 지 고작 두 달 된 새끼의 안락사는 죽임을 당하는 동물이나 이를 행하고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에게 결코 안락할 수 없다. 안락사라는, 그나마 듣기 좋은 단어 속에 감춰진 비극적인 현실을 계속 끄집어내어 근본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아무 죄 없는 동물과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벌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벌은 죄를 지은 이의 몫이라는 상식이 실현되기를

지난 십 년간 20만 마리가 훨씬 넘는 동물이 보호소에서 안락사됐다. 얼마나 많은 수인지 단번에 잘 와닿지도 않는 이 수치는 우리 사회가 동물을 다루는 그릇된 방식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펫숍에는 새로 태어난 새끼들이 넘쳐나고 번식장에는 새끼를 낳기 위해 평생을 착취당하는 동물이 넘치는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모른척하며 펫숍에서 동물을 산다. 그들이 펫숍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유기동물은 병들거나 말썽을 많이 피울 것 같아서, 다 큰 동물보다는 새끼 때 데리고 와야 같이 지내기 수월할 것 같아서, 보호소는 입양 절차가 너무 까다로워서 등등. 그러나 보호소에 들어온 동물들이 그 안에서 마지막을 맞이해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단지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어야 하는 동물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상 동물을 사는 행위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유기동물 보호소 공고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오늘 날짜로 보호 기간 만료인 동물들이 수없이 눈에 띈다. 이들에게 내일이 허락될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로 인한 대가는 아무 죄 없는 동물과 그들을 사랑하는 이들이 치르고 있다. 부디 그들이 오늘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벌은 죄를 지은 이의 몫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 보호소 동물에게까지 적용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사진 = 정진아

동물자유연대에서 반려동물&길고양이 정책을 담당하다 현재 사회변화팀에서 일하고 있다. 성남시 동물보호 담당 주무관과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서 활동가로도 일했다. 동물이 살기 좋은 사회에서는 사람 또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모든 생명이 각자의 가치를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

Leave a Comment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