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민법 개정안이 립서비스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난해 법무부는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1인 가구 급증에 발맞춰 법무부가 발족한 ‘사공일가'(사회적 공존 1인 가구) TF에서 우리 사회에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받는다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취지로 제안됐다. 다만 개정안은 동시에 ‘동물에 대해서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물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구분하는 입법은 이미 해외에서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는 1988년 일반 민법을 개정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물건에 적용되는 규정은 다른 규정이 없는 한 동물에게 적용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독일 역시 1990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동물은 별도의 법률에 의하여 보호된다. 그에 대해서는 다른 규정이 없는 한 물건에 관한 규정이 준용된다.”고 규정했다. 2002년 민법을 개정한 스위스도 앞 국가들과 같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신설해 동물의 ‘비물건성’을 인정했다.
정부 개정안은 이 세 국가의 사례를 참고한 듯하다. 세 나라는 동물의 비물건성을 선언하는 동시에 공통적으로 다른 조항들도 마련했다. 첫째로, 동물이 상해를 입어 치료비를 배상할 때는 치료비가 동물의 가치를 초과하더라도 배상하게 하는 손해배상에 관한 규정이다. 즉, 남의 동물을 다치게 했을 때는 ‘동물 값’만 물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둘째로는 민사소송 시 압류 대상에서 영리목적이 아니고 가정에서 기르는 동물, 정서적 유대감이 있는 동물, 즉 반려동물을 제외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그 외에 독일은 ‘동물의 소유자는 그 권능의 행사에 있어서 동물의 보호를 위한 특별규정을 준수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비록 동물의 소유자가 재산권을 행사할지라도 동물보호에 대한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다.
반면 최근 10년 동안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입법례를 살펴보면 위 국가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와 같이 동물의 물건성을 부정하는 방식에서, ’동물은 OOO이다‘라고 동물의 지위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형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 정의 중 하나가 ‘감응력 있는 존재’(Sentience being)다. 동물복지 과학의 권위자인 도널드 브룸 교수에 따르면 감응력은 ‘느낄 수 있는 능력(Capacity to have feelings)’이라는 뜻이다.

2009년 발효된 리스본 조약 제13조는 ‘농업, 어업, 운송, 연구, 기술 개발, 우주정책 분야에서 연합의 정책을 수립하고 실시함에 있어, 연합 및 회원국은 감응력 있는 존재로서 동물의 복지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동물의 감응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것은 유럽연합 국가들이 동물의 법적 지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는 2015년 민법 개정을 통해 ‘동물은 감응력 있는 존재이다. 동물을 보호하는 법률의 유보 아래 동물은 재산 법제에 따른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벨기에는 2020년 민법을 개정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물건은 동물과 구별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동물은 감응력이 있는 존재이며 생물학적 요구가 있다, 유형 사물과 관련된 조항은 동물과 공공질서를 보호하는 법률 및 규제 조항에 따라 동물에 적용된다”고 규정했다. 동물이 감응력 있는 존재라는 말은 물건과 달리 주변 환경을 느끼고 지각할 수 있으며 즐거움과 괴로움 같은 긍정적, 부정적 상태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생물학적 요구’가 있다는 건 동물 종에 따라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조건들이 있다는 의미다.
비교적 최근에 민법을 개정한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례를 보면, 동물을 감응력 있는 존재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모두 “동물은 감응력 있는, 살아있는 존재”라는 조항으로 동물의 법적 지위를 물건과 구분했다. 그리고 여기에 ‘동물에 대한 소유권’ 조항이 더해졌다.
• 포르투갈 민법 제1305 a조. 동물에 대한 소유권 1) 동물의 소유자는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고 각 종의 특성을 존중하여야 하며, 소유자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동안 필요시 동물의 번식, 출산, 사육, 보호에 관한 규정과 멸종위기에 처한 종에 관한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 2) 앞 조항의 규정 목적 상 동물의 복지는 다음을 포함한다. (i)종의 필요에 따른 물과 음식에 대한 접근 보장 (ii)법에 규정된 예방 조치, 식별 및 예방접종을 포함하여 필요시 수의학적 보살핌에 대한 접근. 3) 동물에 대한 재산권은 정당한 이유 없이 고통, 괴로움, 또는 부당하게 괴롭게 하거나 유기, 죽음을 초래하는 어떤 유형의 학대에 대한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다. |

이는 물건과 동물의 소유권에 대한 사항을 명확히 구분했다는 점, 그리고 비록 자신의 동물이라 하더라도 ‘동물의 이익’을 고려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는 점에서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선언적으로 규정한 과거 입법례에 비해 동물보호의 실효성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스페인은 동물의 감응력을 인정함과 동시에 “재물과 물건에 적용되는 조항은 동물의 본성 그리고 동물보호를 위한 조항과 양립할 수 있을 때만 적용된다”는 조항을 신설해 동물보호 법제 외에도 ‘동물의 본성을 충족할 것’을 재물 관련 법제 적용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했다. 이어 “동물의 소유자, 점유자, 또는 동물에 대한 어떠한 권리를 갖고 있는 자는 동물이 감응력을 가진 생명체로서의 가치를 존중하고, 각 종의 특성에 따른 복지(well-being)를 확보하며, 본 법률과 시행되는 타 법률에 따라 확립된 제한을 존중하여 동물에 대한 권리를 행사하고 동물의 보호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해, 권리 행사뿐 아니라 동물 복지를 확보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고 했다.
두 나라가 개정한 민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의무다. 비록 사람이 소유한 동물이라도, 물건처럼 재산권을 행사할 ‘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유한 동물의 복지를 보장하고 보호해야 하는 의무가 동시에 있다는 의미다.

이 같은 ‘동물복지 책임’은 이혼 소송에도 적용된다. 두 나라의 민법은 누가 반려동물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가족들의 이익과 더불어 ‘동물의 복지’를 고려해 동물의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스페인은 민사소송법에서 압류의 대상에서 반려동물의 제외하는 동시에 동물 자체가 아닌 ‘동물로 인해 창출되는 수입’만 압류할 수 있도록 했고, 저당법에서는 농장동물, 산업동물도 모기지 대출 연장 대상에서 제외했다.
위 사례들에서 동물을 감응력 있는 존재로 정의하고 ‘종에 따른 생물학적 요구’를 인정했다는 점은 과학적 증거에 따른 입법이다. 동물의 감응력은 식물과 같은 다른 생물과 동물이 구분되는 특수성이기도 하다. 최근 10년 동안 동물의 감응력을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의 눈부신 성과가 있었고, 감응력은 일부 ‘영리한’ 동물만이 아닌 대부분의 동물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 확인됐다. 법으로 동물복지 제공을 의무화하는 대상의 범위도 계속해서 확장되는 추세다.
개인 간의 권리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규율하는 민법에 선언적인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동물보호에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꼭 민법 개정이 선행되어야 동물보호를 강화하는 입법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동물을 재산으로 보더라도, 50개 주의 주법 모두 동물학대 행위자의 동물 소유권을 제한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도 동물이 물건이 아니라는 조문이 마련되기 이전부터 동물복지법에서 법 위반자의 동물 소유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물이 권리의 객체가 되더라도 소유자가 자유롭게 이용하고 처분할 수 있는 물건과 달리, 동물은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소유자의 권리 행사에 제한을 두고, 소유자의 ‘보호할 의무’(Duty of care) 규정을 세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민법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를 동물과 구분하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법이 개정되면 ‘내 동물인데, 죽게 내버려 두든 말든 상관하지 말라’거나, 주인의 방치로 생명이 위급한 동물을 구조, 치료하고도 동물이 소유자의 재산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물 유괴범이 되어버리는 현실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동물의 비물건성을 선언하는 조항만 입법할 게 아니라 관련 조항을 재정비해야 한다. 재산이기 이전에 감응력 있는 존재로서 ‘동물의 이익’ 또한 고려해야 하는 근거 규정이 마련되면 우리 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다.
동물에게 물건과 구분되는 법적 지위를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는 이제 더 논의할 필요가 없을 만큼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제 우리는 민법 개정이 선언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정서적 가치’가 있는 주인이 있는 반려동물만 보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산업적 가치’가 우선시되는 농장동물이라 할지라도, 또는 소유자 없는 거리의 동물이라 할지라도 물건이 아닌 ‘느끼는 존재’로 대우받으려면 어떤 입법이 필요할지 생각해 보자.
글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