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 13마리 새로운 친구들이 들어왔다. 센터에 들어온 동물들 중 저마다 사연 하나 없는 녀석이 있겠냐만은 13마리 친구들의 이야기는 조금 더 가슴 아프다.
그들이 구조된 곳은 경기 수원시 어느 도살장이었다. 특히 그 중 순자와 공자는 도살당하기 직전 목숨을 건졌다.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이 도살 정황을 알아채고 황급히 도살장에 들어섰을 때 현장에는 이미 개 한 마리가 도살당한 뒤 토치로 그을려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목이 매달려 죽어 있었다. 그리고 순자와 공자는 자신들이 죽을 차례를 기다리며 그 모든 광경을 지켜봐야했다.
개식용의 비참한 현실

둘은 철망에 갇혀 서로에게 몸을 기대고 의지한 채 활동가들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비쳤다. 그러나 둘 중 공자는 우리를 향해 열심히 꼬리를 흔들고, 철망 사이로 손을 내밀자 정성껏 핥아주었다. 방금 전 인간이 동종의 존재를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고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못한 모습에 심경이 복잡해졌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찰나의 차이로 완전히 다른 길을 가게 된 녀석들. 살아남은 둘과 죽은 둘 사이에는 차이가 없을 터였다. 순자의 겁먹은 눈동자와 공자의 촉촉한 코를 보고 느끼며 개식용의 야만을 또 한번 절감했다.

도살장과 좁은 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는 개농장이 있었다. 도살자는 도살할 개들을 뜬장에서 끄집어내어 철망에 실은 뒤 도살장으로 넘어와 개를 죽였다. 농장에 있던 개들은 알았을 것이다. 한번 거기서 나간 개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그래서였을까, 활동가들이 구조를 위해 개들을 데리고 나올 때 몇몇은 어떻게든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뜬장 구석에 고개를 박고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조차 내지 못하면서도 그들은 기를 쓰고 버텼다. 살리려고 끄집어내던 우리의 손길이 그들에게는 죽음으로 가는 길처럼 공포스러웠을지 모른다.

한편 그 지옥같은 현장에서도 햇살처럼 해맑은 녀석들도 있었다. 숭이는 그 중 하나였다. 활동가들이 뜬장 문을 열기 전부터 신이 나서 깡총거리던 숭이는 케이지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줄곧 헤헤 웃었다. 당연히 센터로 간 뒤에는 더 밝고 명랑해졌다. 숭이의 눈에는 사람에 대한 적대심이나 두려움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호기심, 애정, 따뜻함 같은 것들이 가득 차있다.
13마리 개들은 하나하나 다른 생김새와 특성을 가졌지만, 농장과 도살장에 있으면 그저 식용견이었다. 작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중 사상 처음으로 개식용 종식을 언급한 이후 개식용 종식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했지만, 1년 가까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는 개식용을 끝내지 못했다.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개들이 또 다시 고통스럽게 살고 죽었다.

도살장에서 죽은 개와 죽을뻔한 개, 그리고 죽음을 기다리며 살던 개들을 마주하며 한동안 분노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생명 대접도 하지 않고 개를 키우는 사육자들. 잔인한 방법으로 개를 죽이는 도살자들. 식품 원료로 인정도 받지 못한 불법 식품을 음식이라고 파는 업자들. 영양 과다가 걱정되는 시대에도 보양식이라며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 본인은 먹지 않아도 개식용에 찬성하는 것이 합리적인 줄 착각하는 합법론자들. 논의기구까지 마련되었음에도 여전히 국민적 합의라는 치졸한 핑계 뒤에 숨어 시간만 까먹고 있는 정부. 이 모두가 합심해 수 많은 순자와 공자, 숭이들을 죽였고 지금도 죽이는 중이다. 그러나 숱한 죽음에 책임지는 이는 하나 없다.
대체 식용견이란 무엇인가, 반려견과 식용견을 가르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이 둘을 구분하겠다면 누군가의 반려견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식용견 취급받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반대로 식용견이라 이름 붙었던 개가 반려견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이제 심심치않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수원 도살장에서 살아남은 개들은 온몸으로 자신이 반려견임을 증명하고 있다”
아무리 식용견과 반려견이 다르다는 억지를 부린다한들 그 둘은 결코 구분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존재 자체로 입증한다. 구조 당시 뜬장 구석에 한껏 웅크린 채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 애를 썼던 왕벌이는 온센터에서 조심히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에는 아직 불안이 묻어나지만 꼬리로나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다. 다른 개들이 죽임당하는 과정을 전부 지켜본 순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직은 겁이 나지만 먼저 다가와 서툴게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한걸음씩 용기를 내어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개식용 금지가 이루어지길

일순간의 차이로 안타깝게 별이 된 두 마리 개들의 명복을 빈다. 살아있다면 그 둘 역시 왕벌이나 숭이처럼 어색하게 눈을 맞추며 코를 들이밀거나 넘치는 애정을 주체못하고 우리 주위를 돌며 방방 뛰었을 것이다. 둘이 받았어야 마땅한 사랑은 대신 13마리 개들에게 골고루 나눠줘야겠다.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는 죽음은 개식용 금지를 이루어 조금이나마 갚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글·사진 = 정진아
동물자유연대에서 반려동물&길고양이 정책을 담당하다 현재 사회변화팀에서 일하고 있다. 성남시 동물보호 담당 주무관과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서 활동가로도 일했다. 동물이 살기 좋은 사회에서는 사람 또한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모든 생명이 각자의 가치를 존중받는 세상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