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를 방치하면 흉악범죄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더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동물학대에 엄정한 처벌을 요구합니다.
동물학대에 엄정한 처벌을 요구할 때마다 늘 언급되는 말입니다. 최근 3개월 사이 국내 발생 동물학대 범죄 역시 과거에 비해 그 잔혹성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심지어 최근 발생한 ‘포항 고양이 살해사건’은 초등학교 앞에 새끼 고양이의 사체를 매달아 많은 반려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경찰 역시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일부 사건에서는 법원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해 수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포항 고양이 살해사건 범인 역시 ‘도주 우려가 있다’는 법원 판단 하에 구속영장이 발부되기도 했죠. (관련 콘텐츠 보기 ☞ 아깽이를 초등학교에.. ‘포항 고양이 살해범’이 중형 받아야 할 이유)
그러나 문제는 실제 재판에서 처벌 수위입니다. 지난해 11월, ‘동물판 N번방’에서 실제 동물을 학대하고 그 사진과 영상을 단체 대화방에 게시한 행동대장 A씨는 1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는 화살을 쏴 길고양이의 척추를 관통시키는 매우 잔혹한 행동을 했지만, 법원은 ‘피고인이 초범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며 집행유예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러나 이런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면 결국 돌아오는 건 사람에 대한 범죄일지도 모릅니다. 이는 단순히 동물보호단체만의 주장은 아닙니다. 미국 사법 전문가 역시 비슷한 주장을 최근에 기고문을 통해 밝혔습니다.
미국 형사사법위원회(Council on Criminal Justice∙CCJ) 소속 마크 레빈 수석 정책고문은 지난달 29일 타임지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동물학대와 총기난사 사건의 연관성을 짚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텍사스 주와 뉴욕 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텍사스 주 사건으로 어린이 19명과 교직원 2명이 총격으로 숨졌으며, 뉴욕 주 사건에서는 성인 10명이 사망했습니다.

레빈 고문은 기고문을 통해 “두 사건 모두 18세 청소년들이 범행을 저질렀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동물 학대 성향”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범인은 고양이나 다른 동물을 학대하는 내용의 글과 사진 등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는 지난해 8월 FBI 법집행 회보(FBI Law Enfrocement Bulletin∙FBI LEB)에 게재된 연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물학대범은 사람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다른 사람에 비해 5배가 높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폭력적 성향은 가족 간 폭력으로 더 많이 나타난다고 하죠. 실제로 텍사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은 자신의 할머니를 먼저 저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동물학대범만 흉악한 살인범이 되는 건 아닙니다. 가정폭력 전과자 역시 대량 살상을 저지를 수 있죠. 미국 내에서 발생한 46건의 총기난사 사건 중 27건은 가정폭력 전과가 있거나 친족을 살해한 전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학대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있습니다. 레빈 고문에 따르면 1988~2012년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의 43%가 동물학대 전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2018년 플로리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1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니콜라스 크루즈 역시 지속적으로 동물학대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레빈 고문은 이 사실들을 언급하며 “동물학대와 사람에 대한 폭력 사이의 연관성은 동물들이 인간과 비슷하게 고통을 느끼고 반응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놀랄 일은 아니다”라면서도 “동물을 반복적으로 학대하면 그들의 잔인한 행동에 더 둔감해질 수 있다”며 범죄 위험성이 높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가 인용한 연구 결과와 통계들은 동물학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에서 확실한 제재를 가하는 예방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레빈 고문 역시 미국 의회를 향해 “동물학대를 방지해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더 큰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단순히 입법 조치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관심도 필요하다고 합니다. 레빈 고문은 “만약 청소년의 동물학대를 목격한 사람들이 이를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면, 더 큰 화를 막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미국 휴메인 소사이어티 셰리 램지 동물학대 대응팀장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어린 시기에 동물학대는 가장 쉽게 교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레빈 고문에 따르면 청소년 동물학대 사건의 최초 목격자들은 대게 가족이나 친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사건을 대부분 경미하게 여겨 학대 행위를 저지른 청소년을 고발하는 일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레빈 고문은 “동물학대를 저지른 청소년들을 모두 투옥하는 게 문제 해결책은 아니다”라면서도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전문기관의 일대일 상담 등 적극적인 개입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성인이 저지르는 동물학대 범죄 역시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청소년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수 있겠죠. 문제는 사건을 최초로 접하는 일선 경찰(한국의 지구대 개념)에서는 동물학대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인디애나 주의 절반 가량은 동물학대에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매뉴얼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미국 내 수사인력 중 19%만이 수의사 등 전문가들을 통한 동물학대 수사 교육을 받았으며, 한 설문조사에서는 49%의 응답자가 ‘(동물학대 사건) 전문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공공기관 내의 정보 공유입니다. 코네티컷 주를 비롯한 미국 14개 주에서는 아동 복지 부서와 동물보호 부서가 청소년 동물학대 사건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레빈 고문은 더 많은 주에서 이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동물학대와 청소년 보호 기관들이 더 유기적으로 사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동물학대를 방치하면 흉악범죄를 부른다’는 말은 각종 연구를 통해 사실로 자리 잡는 듯합니다. 이제는 단순 구호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단계가 됐습니다. 동물학대를 예방할 다양한 관점의 대책이 전문가를 통해 제시된 만큼, 국내에서도 유관 기관들이 적극적으로 검토해 종합 대책을 세워야 할 듯합니다.
동그람이 정진욱 8leonardo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