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지킨 영웅견들” 영국에선 훈장까지 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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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각을 다투는 인명구조 현장에서 종종 맹활약을 펼치는 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 지뢰를 찾아내거나 공항에서 마약을 적발하는 탐지견도 있죠. 그뿐 아닙니다. 범죄 피해자나 심신 미약자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정서안정 동물도 있고, 시각장애인의 길 안내를 돕는 안내견도 있죠.

이처럼 사람 곁에서 헌신하는 사역견에게 커다란 명예를 주는 행사가 영국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14일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PDSA(The People’s Dispensary for Sick Animals)는 공로 훈장(PDSA Order of Merits)을 받을 동물들을 발표했습니다. PDSA는 2014년부터 사회에 헌신하는 공로를 세운 동물들에게 매년 이 훈장을 수여해왔습니다. 영국 BBC가 이 훈장을 동물판 대영훈장(OBE)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매우 권위 높습니다.

2022년 PDSA 공로 훈장을 받은 구조견 출신 반려견 ‘잭’. PDSA 홈페이지

올해 수상의 영예를 받은 동물 중에는 사우샘프턴 출신의 보더콜리 품종 ‘잭’(Zak∙14)도 있습니다. 잭은 구조견으로 활동하는 동안 300회가 넘는 구조 임무를 완수하고 임무 수행 도중 4명의 생명을 구한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잭은 현재 은퇴한 뒤 케빈 선더스(Kevin Saunders) 씨의 반려견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선더스 씨는 햄프셔 지역 수색대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면서 잭과 함께 수색 작업에 참여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잭이 은퇴한 뒤 입양까지 하게 된 거죠.

선더스 씨는 “11년 전 3일간 실종된 남성을 발견한 게 잭이 처음으로 구한 생명”이라며 “잭은 영웅”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잭은 구조견으로 활동하는 동안 4명의 인명을 구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PDSA 홈페이지

잭과 함께 훈장을 받은 래브라도 품종 ‘올리버’(6)도 있습니다. 올리버는 범죄 피해자의 정서를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올리버는 특히 범죄 피해 아동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올리버와 함께 활동하는 켄트 캔터베리 크라이스트 처치 대학의 법의심리학 강사 리즈 스프루인 박사는 “강간 피해를 입은 자폐증 소녀는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어려웠으나 올리버와 함께 있을 때 결정적인 증언을 해 범행을 입증할 수 있었다”며 올리버의 활약상을 소개했습니다.

10세 코카 스패니얼 품종 ‘클라이브’도 훈장을 받았습니다. 클라이브는 의료 보조견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브는 함께 살고 있는 반려인 미셸 서덜랜드 씨의 건강을 책임집니다. 애디슨병을 앓는 서덜랜드 씨가 약을 먹어야 할 때를 알려주기도 하고, 그가 갑작스럽게 쓰러질 때에는 크게 짖어 주변에 알려주기도 합니다. 서덜랜드 씨는 “클라이브가 아니라면 저는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의심리학 강사 리즈 스프루인 박사는 범죄 피해자들의 정서 안정을 돕는 개 ‘올리버(왼쪽 사진)’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코카 스패니얼 품종 ‘클라이브’는 애디슨병을 앓는 반려인 미셸 서덜랜드 씨의 의료 보조견으로 활약 중이다. PDSA 홈페이지

사실 유럽에서는 이렇게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개의 명예를 드높여주는 훈장 수여가 종종 있는 편입니다. 가장 가까운 예로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가 있죠. 우크라이나의 폭발물 탐지견 ‘패트론’은 전쟁 이후 200여개의 지뢰를 찾아낸 공로를 인정받아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훈장을 수여하기까지 했습니다. 패트론은 우크라이나에서는 국민 영웅 대접을 받으며 지금도 수색 작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어떨까요?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개에 대한 소식이 미담으로 소개되는 일이 종종 있었죠. 지난 2019년 충북 청주시의 한 야산에서 실종된 조은누리 양을 10일 만에 발견해 화제가 된 군견 ‘달관이’가 대표적입니다. 이후 누리꾼들은 달관이의 특진, 포상휴가 등을 요구하면서 애정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꼭 사역견이 아니라 해도, 사람 목숨을 구한 개의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충남 홍성군에서 실종된 한 할머니의 곁을 지킨 개 ‘백구’의 이야기입니다. 백구는 논두렁에서 실족한 할머니의 곁을 지키며 몸을 비벼 체온을 유지하게 도왔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경찰의 열화상 드론에 감지돼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열화상 드론에는 백구의 생체 신호가 잡혀 구조대가 가능했다고 하네요.

지난해 8월 홍성군에서 실종된 할머니를 구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반려견 ‘백구’의 모습. 홍성군 제공

달관이와 백구는 언론을 통해 그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누리꾼과 지역사회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달관이는 군견 특성상 포상휴가를 받을 순 없었지만, 고급 간식을 선물받았습니다. 백구는 홍성군 명예 소방관으로 임명되기도 했죠.

그러나 이런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사람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역견에 대한 존중은 아직 한국에서 부족해 보이는 게 현실입니다. 심지어는 탐지견으로 일했던 개를 실험에 동원하기까지 했죠. 2019년 세상을 떠난 비글 품종 탐지견 ‘메이’의 이야기입니다.

메이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소속 탐지견으로 활동했습니다. 5년간 탐지견으로 활동했던 메이는 서울대 수의학과 실험실로 옮겨져 실험 대상이 됐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지만, 메이는 실험실에서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실험실 사육사 A씨는 지난해 4월 메이를 학대해 죽게 한 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메이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역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흔한 사역견은 바로 시각장애인 안내견입니다. 그러나 안내견이나 교육 중인 안내견 후보견의 입장을 거부하는 영업장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장애인복지법 40조 3항에 따라 공공장소에서는 장애인 보조견의 출입을 거부할 수 없지만, 막무가내로 입장을 막아서는 곳들도 많죠. 최근에도 한 시각장애인 유튜버가 안내견과 함께 출입하려 했지만, 식당 측에서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수차례 거부 의사를 표현한 영상이 공개돼 누리꾼들의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PDSA 공로 훈장에 장애인이나 의료 보조견 등이 선정되는 건, 그만큼 이 사역견들이 일상에서 묵묵하게 사람을 위해 몸을 내던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극적인 상황에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개들에게 일시적인 관심과 사랑을 전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평상시에도 사람에게 헌신하는 개들에게 감사의 의미를 전하는 차원에서라도 국내에도 이런 멋진 상 하나쯤은 도입되는 게 어떨까요? 동물과 사람의 건강한 관계를 세우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그람이 정진욱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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