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때는…’ 반려동물 먼저 떠나보낸 소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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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람이가 유기동물 입양 편견을 해소하고, 올바른 입양문화 확산과 정착을 위해 동물보호단체를 통해서 ​유기 동물을 가족으로 맞은 분들의 입양 후기를 전합니다. ​​이번 사연은 용인에 사는 ‘윤진아’ 님이 입양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구 애린원)’을 통해 ‘루비’를 입양한 사연입니다.

죽음의 의미를 너무 빨리 깨달아 버린 아들 

저는 원래 고양이 4마리, 개 2마리를 키우는 반려인이었습니다. 16세~18세 되던 고양이 2마리와 개 2마리는 지난 2018~2019년에 걸쳐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동물들이 떠나자 시끌벅적하던 집에도 적막함이 흐르더군요. 과거에는 6마리였지만 당시 제 곁에는 나이가 들어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고양이 2마리뿐이었습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저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이제 10살이 된 아들에게는 더욱 충격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은 침대에 누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족이 죽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 엄마는 오랫동안 나랑 함께 살아줘. 나중에 아주 먼 훗날 죽더라도 내 딸로 다시 태어나줘”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죽음이란 의미부터 깨달아야 했던 아들을 보며 전 죄책감마저 들었습니다. 남은 아이들마저 떠난다면 더 이상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굳건했던 제 다짐도 얼마 뒤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구 애린원 해체 소식을 접했습니다. 1,600마리나 되는 개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다 구조되는 모습을 봤죠. 구 애린원에서 벗어난 아이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따뜻한 가정’을 찾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모든 개를 품을 수는 없지만 한 마리 강아지는 구할 수 있겠다 싶었죠.

아들은 애린원 사연을 접하고 유독 각별한 사이였던 고양이 태비와 럭키를 떠올리며 “고양이들이 환생해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저와 아들은 새 가족을 맞이하기를 원했지만 남편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미 키우고 있는 반려묘 2마리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남편의 말도 물론 일리가 있었지만 전 포기하지 않고 설득했습니다. 고양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공부했고, 남편도 결국 동의를 했습니다. 다만, 입양은 안 되고 3개월 단기 임시 보호를 하자고 결정 내렸습니다.

누렁이 래미안을 만났어요!

2019년 10월 13일, 래미안의 임시 보호를 시작했습니다. 루비 반려인 윤진아 씨 제공

남편의 동의를 얻자마자 전 비글구조네트워크에 임시 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직원분이 추천해 준 아이는 누렁이 ‘래미안(7~8세 추정)’이었습니다. 래미안은 당시 유선종양 수술을 받았지만 임보처를 찾지 못해 다시 보호소로 돌아온 아이였습니다. 가족들의 보살핌이 절실한 상황이라 저희 가족은 지체하지 않고 바로 래미안을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사진으로 처음 봤을 때 래미안은 흔한 누렁이였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참 사랑스러운 매력이 많았습니다. 얼굴은 래브라도 리트리버처럼 생긴 게 다리와 꼬리는 웰시코기처럼 짧았죠.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좋았습니다. 아직 수술한 지도 얼마 안 돼 몸이 불편할 텐데 래미안은 낯선 가족들에게 꼬리를 열심히 흔들었습니다.

래미안은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루비’라는 새 이름을 선물 받았습니다. 윤진아 제공

래미안을 데려오고 난 뒤 저희 가족은 아이의 이름도 새로 지어줬습니다. 저희 가족은 래미안에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값비싼 보석과 같다는 의미로 ‘루비’라는 새 이름을 선물했습니다.

​루비가 온다는 소식에 밤잠을 설치던 아들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오랫동안 목욕을 못 해 온몸에서 시궁창 냄새가 풍겼지만 아들은 기꺼이 루비를 쓰다듬어 줬죠. 래미안을 데려온 날 밤 아들은 “엄마, 저 강아지는 7~8세 정도 됐으니 내가 오빠네”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동안 키웠던 반려동물은 전부 아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아들은 자신이 처음 오빠가 됐다는 사실에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또한, 루비를 데려온 후 매일 밤 온 가족이 산책하러 나갔는데 아들이 루비와의 산책 시간을 행복해했습니다. 얼마 전 ‘나는 누구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가요?’라는 숙제에 아들은 ‘루비와 산책할 때’라고 적어냈더군요. 과거 반려동물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던 아들이 루비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저 또한 흐뭇해졌습니다.

진아 씨의 아들이 숙제를 하며 적은 감동적인 답변! 가장 행복한 때는? 루비와 산책할 때

임시 보호 종료, 그후

루비의 임보가 시작되고 난 뒤 저희 집에는 다시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새 가족을 반대하던 남편은 하루에 두 번씩 시간 맞춰 루비에게 항생제를 먹이고, 수술 부위를 소독해 줬죠. 더욱 다행인 점은 루비가 놀랄 만큼 늙은 고양이들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도 느긋한 성격인 루비는 고양이들의 심기를 거스를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18세 노묘인 ‘라라’와 16세 ‘라울이’도 루비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그전과 같이 평온하게 지냈습니다.

묘르신이 밥 먹을 때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예의 바른 루비

얼마 뒤 루비는 앞서 다 제거하지 못했던 유선종양을 없애기 위해 재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무사히 회복한 루비는 퇴원하는 날에도 저희를 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죠. 수술 부위가 당겨서 통증이 심했을 텐데, 앞발을 높이 들며 가족을 반겼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얼마 뒤 “이렇게 상처투성이인 아이를 누가 입양하겠어. 우리가 데리고 살아야지”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은 2019년 11월 11일 임시 보호를 마치고 입양을 결정했습니다. 한 달간의 임보를 종료하고 입양이 결정되자 아들은 대성통곡을 했죠. 폭풍 눈물을 흘리던 아들은 “루비야, 앞으로 내가 정말 잘할게. 루비만 입양할 수 있다면 이제 아이패드도 안 보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산책도 매일 나갈 거야”라고 스스로 약속했습니다.

아들과 루비의 귀염뽀작 케미! 진아 씨의 아들은 동물을 사랑하는 꼬마 집사입니다.

유기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루비를 입양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여전히 아들은 아이패드도 많이 보고, 숙제도 제대로 안 해서 혼나지만 우리 가족은 루비와 함께 살며 어느 때보다 많이 웃고,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입양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밥만 먹이고, 잠만 재워주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죠. 새롭게 맞이한 강아지의 성향에 따라 저처럼 매일 2~3번 산책을 나가야 할 수도 있고, 분리불안을 겪는 강아지의 경우 인내심 있게 훈련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여름휴가는 반려동물과 함께 갈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할 만큼 ‘새로운 가족’은 여러분에게 또 다른 기쁨과 행복을 줄 것이라 믿습니다. 혹시 강아지를 잘 몰라서 입양이 두려운 분들은 성견을 입양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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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루비 반려인 윤진아 씨 제공

글 = 동그람이 장형인 trinity03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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