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했습니다. 세계 각국의 조문과 애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동물을 사랑했던 여왕을 기억하는 목소리도 속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국 동물보호단체 ‘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RSPCA) 크리스 셔우드(Chris Sherwood) 대표는 “우리의 군주이자 후원자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며 “70년 재임 기간 여왕의 동물 사랑은 매우 잘 알려져 있었다”는 애도사를 전했습니다. RSPCA는 애도사를 통해 2024년부터 동물복지에 공헌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여왕의 이름을 딴 새로운 상을 제정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RSPCA 외에도 페타(PETA), 세계동물보호협회(WAP) 등 국제 동물단체도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는 여왕이 재임 중이던 2021년 의회 연설을 통해 ‘최고 수준의 동물복지법’을 국정 과제의 하나로 언급한 데 따른 조의 성명이었습니다. WAP는 “2021년 제정된 새 동물복지법안을 포함해 중요한 동물복지 법안에 기여했다”고 밝혔으며 페타는 “여왕은 재임 기간 왕실 근위병 모자의 곰 가죽을 인조 가죽으로 교체했다”고 여왕의 행적을 기렸습니다.
동물단체 외에도 영국 반려인들 역시 애도의 뜻을 드러냈습니다. 올해는 여왕의 재임 70주년을 맞는 ‘플래티넘 주빌리’로 전국 각지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 중 지난 6월, 웨일스 지역의 톤턴(Taunton)에서는 여왕이 키웠던 웰시코기 30마리의 인형을 제작해 전시한 ‘코기 산책로’를 만든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산책로 조성 사업에 주도한 톤턴 지역 반려인 수지 토마스 씨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여왕 서거 소식을 듣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며 “여왕의 반려견 사랑은 우리와 닮아 있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우리가 여왕을 사랑했던 이유”라고 전했습니다.
이처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라고 하면 웰시코기를 떠올릴 만큼, 여왕의 웰시코기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BBC는 서거 이후, 여왕의 반려견들을 기록한 역사를 정리해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여왕이 처음 반려견으로 맞이한 웰시코기는 18세 때부터 키운 ‘수잔’이었습니다. 수잔은 여왕의 신혼여행에도 함께 했는데, 당시 신혼여행을 위해 탄 마차의 카펫 밑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비록 수잔은 1959년 생을 마감했지만, 여왕의 코기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수잔의 후손은 총 60마리로 여왕은 이중 30마리를 직접 키웠습니다. 그 외의 개들은 왕족 혹은 여왕의 친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60마리의 개들은 ‘왕실의 코기’(Royal Corgi)라 불렸습니다. 한때 여왕의 곁에는 10여 마리의 웰시코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기도 했는데, 이 모습을 본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움직이는 카펫”이라고 묘사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여왕이 처음 수잔과 반려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사실 웰시코기는 잉글랜드에서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품종은 아니었습니다. 웰시코기는 이름처럼 웨일스 지방에서 주로 지내던 반려견으로, 해당 지역에서만 잘 알려졌을 뿐이었죠. 그러나 재임 기간 동안 웰시코기가 지속적으로 여왕과 함께 노출되면서 웰시코기의 인기도 급상승했습니다. 여왕이 즉위한 지 10년 만인 1960년대에는 웰시코기가 9,000마리 가까이 등록됐다는 기록이 영국 켄넬 클럽(Kennel Club)에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왕실의 코기는 그 대우도 특별했습니다. 영국 왕실 역사가 페니 주노르의 저서 ‘여왕의 코기’(The Queen’s Corgi)에는 “여왕의 주거 공간에는 코기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바구니와 쿠션이 마련돼 있을 정도로 여왕의 큰 사랑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주노르는 저서를 통해 “여왕은 개를 사랑하는 수많은 평범한 시민들과 진정한 우정을 쌓아 왔다”며 여왕의 반려생활을 평가했습니다.

2012년 영국 런던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당시에도 여왕의 코기는 화제가 됐습니다. 영국의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첩보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가 여왕을 의전하는 콘셉트의 개막식 영상이 제작됐는데, 크레이그와 함께 여왕의 곁에 있는 웰시코기가 등장한 겁니다. 이 영상에 등장한 웰시코기는 ‘윌로우’(Willow)라는 개로 수잔의 14대손이자 마지막 후손입니다. 여왕이 2002년 이후로는 수잔의 후손을 번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왕은 수잔의 후손을 더 이상 번식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내가 세상을 떠난 뒤 개들이 남아서 갈 곳이 없어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왕실 코기의 마지막 후손인 윌로우는 2018년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이후 수잔의 후손은 버킹검 궁전에 남아 있지 않게 됐습니다.

‘사후에 반려견이 남아서 갈 곳이 없으면 안 된다’며 번식을 중단했지만, 여왕의 뜻은 실제로 옮겨지지 못했습니다. 여왕 생전에 함께하던 웰시코기들이 더 남아 있어서였습니다. 이 개들은 ‘믹’과 ‘샌디’였는데,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가 지난해 여왕에게 선물한 반려견이었습니다. 여왕 서거 이후 이 반려견들의 행방이 주목을 받자 앤드루 왕자는 11일, 대변인을 통해 믹과 샌디를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밝혔습니다.
여왕 생전에 인기를 구가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웰시코기가 향후 그 인기가 시들해질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동안 품종견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기가 시들해지면 유기되는 사례가 급증했기에 웰시코기도 비슷한 절차를 밟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입니다. 영국 켄넬 클럽 도서관의 시아라 파렐(Ciara Farrell) 매니저는 BBC에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그럴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내다봤습니다. 파렐 매니저는 “지금 세대에서 웰시코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코기를 접한 사람들이 더 많다”며 왕실의 영향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분석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영국 왕실에서 웰시코기를 볼 수 있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재임 70년간 웰시코기 사랑을 통해 여왕이 전한 ‘동물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가치는 분명 널리 전해졌을 듯합니다.
동그람이 정진욱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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