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집사의 소신 발언 “지구상에 고양이가 너무 많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이런 살벌한 문구들이 공익광고 전면을 떡하니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에서 만들고 홍보한 반세기 전 표어들이다. 정부는 1960년대에는 ‘세 자녀’, 1970년대에는 ‘두 자녀’, 1980년대에는 급기야 ‘한 자녀’를 기준으로 삼아 적극적으로 출생률을 낮추는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다. 저출생 현상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적극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펼치고 있는 현재에서 돌아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한때 대한민국은 폭발적인 인구 증가세를 걱정하던 국가였다. 참,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앞에서 언급한 국가 단위의 산아제한 및 출산장려 정책은 이른바 인간 종의 ‘개체수 조절’을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계로 범위를 넓혀서 살펴보더라도, 개체수가 늘어 일정 한계치를 넘긴 다음부터는 오히려 개체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관찰된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속에서 개체수가 조절되기도 하며, 특별한 천적이 없는 경우에는 먹이의 양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개체수 조절에 영향을 미친다. 지구 생태계의 개체수는 일정한 법칙을 가지고 늘고, 줄면서 균형을 유지하도록 조절된다는 것이 현대 생태학이 내놓은 연구 결과다. 개와 고양이를 길들여 반려동물로 삼은 것도 인간이 생태계에 개입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이렇게 생태계가 자체적으로 균형을 유지하는 과정에 인간이 개입한다면 어떨까? 이미 오랜 옛날부터 인간은 많은 동식물을 멸종시키기도 하고, 또는 인위적으로 번식을 늘리기도 하면서 생태계에 개입해 왔다. 생존을 위해 야생에서 살던 동물을 길들여서 가축화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제는 가축 중에서도 일부 동물들을 ‘반려동물’ 삼아 가족처럼 여기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가 이 분야의 대표격이다. 특히 고양이의 위상 변화는 극적이다. 이제는 ‘도둑고양이’라는 말조차도 ‘길고양이’로 대체될 정도니까 말이다. 서론이 길었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인간은 이미 자연계가 유지하는 균형에 깊숙이 개입해 왔고, 그런 가운데서도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은 더욱 적극적으로 균형을 깨뜨리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강아지, 귀여운 고양이는 당신의 집에 발을 들인 시점에서 야생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책임감을 갖자는 이야기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생태계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자는 것이다. 즉, 개체수 조절의 책임도 인간에게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하고 있는데…꾸꾸는 발라당 누워 잠을 잡니다. 귀여우면 다야?

냥님의 선택을 받으려는 ‘캔따개’의 하드코어 미션

인생의 다양한 즐거움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일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이로 씹고 혀로 맛보고 목구멍으로 넘기는 쾌감은 그 어떤 감각보다도 즉각적이고 선명하다. 특히 최근에는 범세계적인 역병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니 집에서 ‘시켜 먹는 즐거움’이 더욱 각광을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지만, 오죽했으면 코로나 유행으로

도와주세요! 추워진 날씨에 집사에게 불어닥친 시련

반려동물들에게 피부병이란 한 번쯤은 꼭 거쳐가곤 하는, 그럼에도 매우 귀찮은 관문 중에 하나다. 수의사들도 개, 고양이들이 동물병원을 찾는 가장 흔한 이유로 피부병을 꼽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링웜(피부사상균증)’으로 불리는 곰팡이성 피부병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발병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람에게도 옮을 수 있는 인수 공통 감염병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관리해야 한다.

꾸꾸 ‘생일 선물’에 대한 집사와 냥이의 동상이몽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꾸꾸의~ 생일 축하합니다! 와, 박수!” 2018년 서울 동대문구 어느 오피스텔 앞에서 처음 만난 꾸꾸. 지난 8월 17일은 <무는 고양이와 하찮은 집사>의 주인공이자,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하는 ‘무는 고양이’ 꾸꾸의 생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스트리트’ 출신인 꾸꾸에게 생일은 동대문구 모처에서 태어난 ‘서울 깍쟁이’가 50여일 간의 임시 보호를 거쳐 ‘붓싼 싸나이’가 된 날이다. 이날 꾸꾸는 약 다섯 시간에 걸친 장거리 이동 끝에 낯선 공간을 처음 밟았다. 그럼에도 금세 화장실을 가리고 잠을 청하는 등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 ‘천생 집고양이’, ‘누가 보면 여기서 태어난 줄 알겠다’는 평을 들었다. 묘생 4개월 차의 적응력이 이리도 뛰어날 줄이야! 묘생 4개월차 꾸꾸는 엄청난 적응력으로 ‘붓싼 싸나이’가 되었다. 실제로 꾸꾸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인 2018년 4월 초중순(동대문구 모처 수의사 선생님 피셜) 역시 캘린더에 표시해 두고 기억하고 있다. 날짜는 대강 4월 10일쯤으로 정했다. 그리고 꾸꾸가 최초로 구조된 날인 2018년 7월 1일 역시 기념한다. 이름하여 꾸꾸 묘생 3대 명절! 그리하여 사실 꾸꾸의 정확한 생일은 4월 어드메가 되어야 맞겠으나… 가족 내 최고 존엄, 어머니께서 ‘강력하게 꾸꾸가 가족이  된 날이야말로 무조건 최고 기념일’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우리집에서 가장 크게 기념하는 꾸꾸의 생일은 8월 17일로 정해졌다. 아무튼, 생일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생일 선물 아닌가. 생일 전날, 꾸꾸 누나는 무슨 선물을 줄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장난감이 좋을 것 같은데… 이 기회에 캣휠을 사줄까? 하지만 안 타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꾸꾸가 중성화 수술 때 함께 피 검사를 받았던 것 말고는 딱히 건강검진이라는 걸 받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물어봤더니 세 살 정도면 종합검진을 받을 때도 됐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좋다, 우리 꾸꾸의 세 번째 생일 선물은 건강검진이다!  꾸꾸는 아마 생일날에도 이렇게 집에서 늘어져 편히

힘껏 물려 피 나도 웃음이 난 집사… 도대체 무슨 일이?

개인적으로 이번 6월은 심신이 모두 힘들었던 달이었다. 시작부터 최악이었다. 몸과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서 무려 일주일 동안이나 집 밖으로 제대로 나가지 못했다. 출근이 불가능했음은 물론이다. (다행히 회사로부터 많은 배려를 받았다.) 그 기간이 지나자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지면서 거동이 가능해졌지만, 마음의 상태는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폭식을 하기도 했고, 구토를 하기도 했으며, 뜬눈으로 밤을 새기도 했고, 하염없이 잠만 자기도 했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생존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말 그대로, 죽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있던 나날이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 수록 멀리 떨어져있던 꾸꾸 생각이 더 많이 났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힘들면 잠시라도 좋으니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하셨다. 때맞춰 운 좋게도 금, 토, 일요일 3일을 몰아서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그 기간 동안 부산의 본가에서 지내게 되었다. 지난 4월 중순에 상경한 이후 두 달 만이었다. 솔직히 본가로 내려가는 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엉망진창인 상태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자존심도 상했고, 몇 시간이나 걸려서 이동할 기력도 없었다. 그런 내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경기도 모처에서 부산 해운대까지 내려가기로 한 건, 오로지 꾸꾸 때문이었다. 꾸꾸가 정말 사무치게 보고 싶었기 때문에. 고속버스로 다섯 시간을 이동하여 부산에 도착해, 다시 지하철을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더 움직인 끝에야 본가의 현관문 앞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현관문 앞에는 내가 며칠 전에 주문한 꾸꾸 화장실 모래 박스가 놓여 있었다. 문을 열고 현관 안쪽으로 박스를 밀어넣자, 익숙한 울음 소리가 들렸다. 유리 중문 너머로 꾸꾸가 야옹야옹 울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꾸꾸는 숨지는 않았지만, 경계를 늦추지도 않았다. 문을 열고 발을 내딛자 꾸꾸가 내 발에 머리를 부벼대…는 건 내 희망사항이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일단 튀어나오지만, 그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때는 침대 밑으로 숨곤 한다. 정말 다행히도 꾸꾸가 날 보고 숨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추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야옹대는 꾸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들어오자마자 주방으로 직행해 냉장고를 열고 “꼬기꼬기~”를 외쳤다. 고기(간식)를 먹자는 의미다. 그러자 꾸꾸가 총알같이 달려와 내 발치에 제 머리를 들이밀었다. 간식의 힘은 위대했고 적어도 간식에 대한 꾸꾸의 기억은 선명했다. 꾸꾸의 마음을 얻는 데는 북어트릿 두 개면 충분했다. 다시 만난 꾸꾸는 꽤 의젓해져 있었다. 꾸꾸를 구조한 게 2018년 7월이었고, 당시 생후 3개월 정도(서울 동대문 모처 수의사 선생님 추정)였으니 꾸꾸는 2018년 4월생으로 추정된다. 이제 어느덧 만 세 살이 넘은 것이다. 청년 고양이로서 어머니께 효도하고, 사냥놀이도 잘 해서 의젓해졌다는 건 아니다. 반가운 나머지 ‘금기’를 잊고 자꾸 만지려고 드는 누나 집사를 공격하는 대신, 점잖게 고개를 돌리거나 자리를 피하는 꾸꾸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왠지 오기가 생겨, 이렇게도 만져보고 저렇게도 만졌지만 꾸꾸는 슬쩍슬쩍 피하다 침대 밑으로 들어가 버릴 뿐이었다. 분명히 이쯤 되면 물었어야 정상인데, 기분이 이상했다. 꾸꾸가 날 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니가 너무 많이 물려서 진짜로 좀 이상해진 것 같다며 원래 고양이는 물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타박을 들었다. 꾸꾸도 이제 나이가 드니까 좀 순해진 거 아니냐고, 축하한다는 인사도 받았다. 그런 건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랜만에 본 꾸꾸는 집사의 손길에도 물지 않고 자리를 피하는 낯선 모습을 보였다. 귀가하신 어머니께 이 소식을 알렸더니, 꾸꾸가 확실히 많이 점잖아진 건 사실인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제 ‘무는 고양이와 하찮은 집사’는 꾸꾸가 물지 않게 되었으므로 이대로 끝내야 하는 게 아닌가 조금 걱정이 됐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물론 손길을 피하는 것 자체는 여전했지만 그게 어딘가!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꾸꾸에게 간식도 주고, 밥도 주고, 오랜만에 같이 사냥놀이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화장실도 치웠는데, 오랜만에 꾸꾸 맛동산 냄새를 맡으니 향기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꾸꾸와의 만남이 반가웠나 보다. 얼마 전 ‘자꾸 침대에서 자려고 들어서 파양된 고양이’의 입양 홍보 트윗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파양자에게 분개하며 ‘살다살다 이렇게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을 싸지르는 파양 사유는 처음 봤다’며 정말 참신하게 나쁜 놈이라고 길길이 뛰었다. 파양 자체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자꾸 침대에서 자려고 든다’는 사유로 파양을 했다는 게 너무 괘씸했다. 누구는 같이 자고 싶어도 못 자는데… 꾸꾸는 나랑 같이 자주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는 좀 달랐다. 꾸꾸가 내 침대 옆에 놓아둔 박스에서 잠을 청한 것이다. 아니, 머리맡…은 아니지만 하여튼 그에 준하는 곳에 꾸꾸가 있다니! 놀랍게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까지도 꾸꾸는 박스 안에 있었다. 항상 자리를 옮겨가며 끊어 자는 버릇이 있는 꾸꾸에게선 보기 드문

작은 털뭉치와 살면서 생긴 집사의 간절한 소망

누군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그 순간부터 라이프스타일이 바뀐다는 걸 의미한다. 생활 습관도 서로 조율해야 하고, 필요와 욕망의 형태도 변화한다. 당장 동거하는 구성원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고, 둘이 아니라 셋이 될 때 장바구니에 담기는 물건 구성부터 많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만약 성인이 아니라 어린이나 청소년이 새 구성원으로 합류한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함께하는 상대에 따라 정도에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튼 어느 정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스스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인간과의 동거조차 그러한데, 생활하는 데 인간의 도움이 필요한 반려동물과의 동거는 오죽할까! 산책을 나가고 실외배변을 하는 강아지를 키우게 된 멍집사는 반려견에 맞춰 자신의 생활 습관을 규칙적으로 설정하곤 한다. 게다가 개는 사람에 정서적 의존도가 큰 동물인만큼, 외출할 때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고 한다. 굳이 반려동물까지 가지 않더라도, 하다못해 식물을 길러도 출타 시에는 이런저런 대비가 필요하다. 종을 막론하고, 나 아닌 다른 삶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킬 중대한 결심을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귀여운 털뭉치와 함께 살면서 내 삶에 바뀐 것들은 어떤 게 있을까? 고양이는 개보다 비교적 독립적인 동물이니 사정이 좀 나을까? 개체 별로 지닌 특색과 성격이 다른 만큼 확실하게 말은 못하겠지만, 적어도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개들에게 산책을 떼어 놓을 수 없다면 고양이에게는 사냥놀이와 캣타워가 필수적이다. 넓은 집에 산다면 사냥놀이를 해 주는 것이나 캣타워를 하나 놓는 것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원룸에 거주한다면 공간적으로 꽤 부담이 된다. 캣타워 뿐만이 아니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모래에 배변하므로 화장실에 모래를 깔아줘야 하는데, 그러면 고양이가 배변을 할 때 모래를 파헤치면서 집안이 모래 범벅이 된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바닥에 깔린 모래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언제 모래알이 내 발바닥을 찌르더라도 화내지 않고 익숙하게 모래알을 떼어낼 수 있을 때, 드디어 집사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사야! 지금도 집순이면서 얼마나 더 집에 있고 싶은거냥! 개인적으로 꾸꾸 누나가 꾸꾸와 함께 하면서 겪게 된 가장 큰 변화는 ‘정주하는 삶’에 욕망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꾸꾸 누나는 ‘집순이’다. 어렸을 때

누나 집사 부재 중 발생한 ‘유혈사태’의 결말

‘무는 고양이와 하찮은 집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현재 ‘집사’ 꾸꾸 누나는 ‘무는 고양이’ 꾸꾸와 따로 살고 있다. 지난 연재분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부산에 살고 있던 꾸꾸 누나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친구의 집으로 모험을 떠났다. 반드시 거액의 상금이 걸린 문학상을 타서 금의환향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로 말이다. 하지만 꾸꾸 누나의 ‘전업 작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꾸꾸 누나가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 집사’ 어머니께서 ‘혼자 꾸꾸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고 선전포고를 하신 것이다. 대작을 쓰겠답시고 매일 노트북과 눈싸움만 하던 꾸꾸 누나는 급하게 직장을 다시 구해야만 했다. 여기에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꾸꾸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고 있던 찰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실은 그냥 외로워서 해본 소리였다’는 엄마 집사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는 선전포고와 ‘그냥 외로워서 해 본 소리였다’는 고백 사이에 벌어진 몇 가지 일을 써볼까 한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엄마 집사와 꾸꾸 사이에는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꾸꾸에게 급여하는 사료의 양을 줄였다. 꾸꾸 누나가 친구 집의 터줏대감인 ‘안 무는’ 고양이 두 마리와 지내면서 ‘고양이는 늘 약간 배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안 무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하찮은 집사의 이야기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라!)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비만묘인데, 지병으로 고지혈증을 앓고 있어 식사량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했다. 아니, 고양이도 고지혈증에 걸려? 깜짝 놀란 꾸꾸 누나는 황급히 엄마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급여량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한때 꾸꾸의 다이어트를 시도했던 전적이 있었지만, 두 집사 다 집을 오래 비우는 날이 이어지자 먹는 즐거움이라도 누리라며 다시 자율 급식을 하던 차였다. 제한급식이라니! 먹고 자는 것이 낙인 꾸꾸에게 닥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집사의 과장이 아니다. 항상 배부르게 먹고 남긴 다음 새 사료를 리필 받는 데 익숙해져 있던 꾸꾸에게는 이전보다 엄격해진 제한 급식이 처음에는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줄어든 양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료를 다 먹어 버리곤 했다. 그릇에 오래 남아 있는 사료는 잘 먹지 않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을 만큼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그러고는 엄마 집사의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도어락 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와 어머니의 발치에 몸을 비벼댔다. 꾸꾸가 얼마나 심하게 몸을 비벼댔는지, 엄마 집사는 꾸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기상하실 무렵이 되면(대략 새벽 5시쯤 되는 시간이다) 귀신같이 다가와 살짝살짝 팔을 물며 치대기도 했다. 첫 간식을 달라는 것이다. 다행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꾸꾸도 새로운 급여량에 적응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게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줄어든 양에 맞게 다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건지 다시 오래된 사료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사료를 진짜 리필해 주거나, 혹은 리필한 것처럼 사료를 뒤적거려줘야 다시 먹는다. 까다로운 녀석.) 퇴근하신 어머니에 대한 반응도 영 시큰둥해졌다. 원형 스크래쳐 안에 몸을 말고 누워 눈만 껌벅거리는 녀석에게 어머니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드셨다고 한다. 그래도 꾸꾸 누나에게 전화를 건 엄마 집사의 목소리는 밝았다. “우리 꾸꾸가 식탐이 많은 아는 아니지.” 뭐든지 자랑으로 승화시키는 엄마 집사였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꾸꾸와 엄마 집사 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집사가 청소를 하던 도중, 갑자기 꾸꾸가 청소기에 날카롭게 반응하며 하악질을 해댄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꾸꾸가 청소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던 터라 엄마 집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청소를 이어갔는데, 그날따라 꾸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엄마 집사의 제지에도 계속해서 청소기를 공격했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도 없고, 싫다는 고양이에게 청소기를 계속 들이댈 수도 없었다. 엄마 집사는 꾸꾸를 잠시 다른 방으로 격리해 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거기서 일이 터졌다. 꾸꾸가 엄마 집사의 손을 공격한 것이다. 공격당한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가운데 엄마 집사는 당황과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맹수를 키우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순간적으로 ‘이 고양이랑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보다도 당장 꾸꾸가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두려워진 엄마 집사는 일단 계속해서 으르렁대는 꾸꾸를 진정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북어트릿 한 조각을 주었다. 간식 먹은 꾸꾸는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듯했다. 그 틈을 타 엄마 집사는 꾸꾸를 베란다로 몰아 격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꾸꾸 누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아 한참 동안 꾸꾸와 엄마 집사는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전화가 연결됐다. 그제서야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어머니의 손을 걱정하면서도, 간식을 준 것은 잘못된 대처였다고 말씀드렸다. 일단 오늘은 더 이상의 간식 없이, 꾸꾸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격리시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많이 놀란 상태셨던 어머니는 전화 통화를 하며 꾸꾸가 얼마나 사납게 굴었는지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자식같이 키우던 녀석에게 공격받은 것 자체가 큰 충격이셨던 듯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고 말씀하신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이제 꾸꾸와 어머니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다’라며 체념했다. 그러나 다시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어머니는 다행히도 이전처럼 ‘엄마 집사’의 모습으로 돌아와 계셨다. 격리 후, 꾸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하셨다. 정황상 꾸꾸의 공격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청소기였던 것 같았고, 무엇보다 꾸꾸가 격리당한 이후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공격당한 당일은 사료 급여를 중지했지만,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을 떴을 때 영 서먹하게 구는 꾸꾸에게 북어트릿을 먹이며 단단히 타일렀다고도 하셨다. 꾸꾸 누나는 무슨 영문인지 잘 알 수가 없었지만, 당사자들끼리 잘 해결했다니 그저 다행일 따름이었다.  이렇듯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엄마 집사와 꾸꾸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꾸꾸 누나가 “꾸꾸를 데려가겠다”라고 하자 “꾸꾸를 데려가라는 건 그냥 해 본 소리였다. 내게서 꾸꾸를 뺏어갈 수는 없다. 꾸꾸와 나는 1+1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온 걸 보면, 확실하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막둥이 꾸꾸가 채워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나는 어머니께 꾸꾸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지만, 어쩌면 꾸꾸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고양이에게 부탁해! 꾸꾸 누나고양이 꾸꾸와 함께 물고 물리는 일상을 보내며 글 쓰는 작가. 한겨레21이 2020년 주최한 제12회 ‘손바닥문학상’에서 ‘양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로 가작에 당선됐다. 꾸꾸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물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초보 집사 시절 앓던 병을 이제는 엄마가 앓고 있어요”

꾸꾸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8개월이 지났다. 동물공감에 격주로 업데이트되는 이 글 한 편을 쓰기 위해 내가 사용하고 있는 장비들은 다음과 같다. 가장 중요한 장비는 워드프로세서 용도로 사용하는 맥북 프로 2015년형이다. 나는 인터넷에 연결된 맥북을 사용해 자료를 찾고, 글을 타이핑하고, 편집자님께 송고한다. 여기에 손목과 허리, 목의 건강을 위해 맥북에

우리집 평화 유지냥 ‘꾸꾸’가 냉전을 끝내는 방법

경상도 사람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편견이다. 서울내기 내 친구는 ‘서울깍쟁이’처럼 굴지만 그 누구보다 목소리가 크고 ‘부산’스럽다. 옆에서 지켜보면 그야말로 일상 자체가 뮤지컬이 따로 없다. 부산 출생의 경상도 토박이인 나는 아주 침착한 성격이다. 목소리 톤도 낮고 차분해서, 평소에도 마치 기자나 아나운서가 말하는 것 같다는 평을 자주 듣는다. 예외는 언제나 존재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