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집사 부재 중 발생한 ‘유혈사태’의 결말

‘무는 고양이와 하찮은 집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현재 ‘집사’ 꾸꾸 누나는 ‘무는 고양이’ 꾸꾸와 따로 살고 있다. 지난 연재분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은 사정 때문이다.  부산에 살고 있던 꾸꾸 누나는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서울에 사는 친구의 집으로 모험을 떠났다. 반드시 거액의 상금이 걸린 문학상을 타서 금의환향하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로 말이다. 하지만 꾸꾸 누나의 ‘전업 작가’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꾸꾸 누나가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 집사’ 어머니께서 ‘혼자 꾸꾸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고 선전포고를 하신 것이다. 대작을 쓰겠답시고 매일 노트북과 눈싸움만 하던 꾸꾸 누나는 급하게 직장을 다시 구해야만 했다. 여기에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꾸꾸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고 있던 찰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실은 그냥 외로워서 해본 소리였다’는 엄마 집사의 고백이 이어지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는 선전포고와 ‘그냥 외로워서 해 본 소리였다’는 고백 사이에 벌어진 몇 가지 일을 써볼까 한다. 내가 집을 비운 동안 엄마 집사와 꾸꾸 사이에는 꽤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꾸꾸에게 급여하는 사료의 양을 줄였다. 꾸꾸 누나가 친구 집의 터줏대감인 ‘안 무는’ 고양이 두 마리와 지내면서 ‘고양이는 늘 약간 배고픈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안 무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하찮은 집사의 이야기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라!)  고양이들 중 한 마리가 비만묘인데, 지병으로 고지혈증을 앓고 있어 식사량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했다. 아니, 고양이도 고지혈증에 걸려? 깜짝 놀란 꾸꾸 누나는 황급히 엄마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급여량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한때 꾸꾸의 다이어트를 시도했던 전적이 있었지만, 두 집사 다 집을 오래 비우는 날이 이어지자 먹는 즐거움이라도 누리라며 다시 자율 급식을 하던 차였다. 제한급식이라니! 먹고 자는 것이 낙인 꾸꾸에게 닥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집사의 과장이 아니다. 항상 배부르게 먹고 남긴 다음 새 사료를 리필 받는 데 익숙해져 있던 꾸꾸에게는 이전보다 엄격해진 제한 급식이 처음에는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줄어든 양에 적응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사료를 다 먹어 버리곤 했다. 그릇에 오래 남아 있는 사료는 잘 먹지 않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개의치 않을 만큼 배가 고팠던 것 같다. 그러고는 엄마 집사의 퇴근을 오매불망 기다리다 도어락 번호 입력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총알같이 튀어나와 어머니의 발치에 몸을 비벼댔다. 꾸꾸가 얼마나 심하게 몸을 비벼댔는지, 엄마 집사는 꾸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기상하실 무렵이 되면(대략 새벽 5시쯤 되는 시간이다) 귀신같이 다가와 살짝살짝 팔을 물며 치대기도 했다. 첫 간식을 달라는 것이다. 다행히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꾸꾸도 새로운 급여량에 적응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게눈 감추듯 그릇을 비웠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줄어든 양에 맞게 다시 페이스 조절을 하는 건지 다시 오래된 사료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사료를 진짜 리필해 주거나, 혹은 리필한 것처럼 사료를 뒤적거려줘야 다시 먹는다. 까다로운 녀석.) 퇴근하신 어머니에 대한 반응도 영 시큰둥해졌다. 원형 스크래쳐 안에 몸을 말고 누워 눈만 껌벅거리는 녀석에게 어머니는 약간의 배신감마저 드셨다고 한다. 그래도 꾸꾸 누나에게 전화를 건 엄마 집사의 목소리는 밝았다. “우리 꾸꾸가 식탐이 많은 아는 아니지.” 뭐든지 자랑으로 승화시키는 엄마 집사였다.  그렇게 사이가 좋았던 꾸꾸와 엄마 집사 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엄마 집사가 청소를 하던 도중, 갑자기 꾸꾸가 청소기에 날카롭게 반응하며 하악질을 해댄 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꾸꾸가 청소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아니었던 터라 엄마 집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청소를 이어갔는데, 그날따라 꾸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다. 엄마 집사의 제지에도 계속해서 청소기를 공격했다. 그렇다고 청소를 안 할 수도 없고, 싫다는 고양이에게 청소기를 계속 들이댈 수도 없었다. 엄마 집사는 꾸꾸를 잠시 다른 방으로 격리해 두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거기서 일이 터졌다. 꾸꾸가 엄마 집사의 손을 공격한 것이다. 공격당한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는 가운데 엄마 집사는 당황과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맹수를 키우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순간적으로 ‘이 고양이랑 계속 같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무엇보다도 당장 꾸꾸가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 없었다. 두려워진 엄마 집사는 일단 계속해서 으르렁대는 꾸꾸를 진정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북어트릿 한 조각을 주었다. 간식 먹은 꾸꾸는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듯했다. 그 틈을 타 엄마 집사는 꾸꾸를 베란다로 몰아 격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꾸꾸 누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아 한참 동안 꾸꾸와 엄마 집사는 대치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전화가 연결됐다. 그제서야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어머니의 손을 걱정하면서도, 간식을 준 것은 잘못된 대처였다고 말씀드렸다. 일단 오늘은 더 이상의 간식 없이, 꾸꾸의 흥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격리시켜 두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많이 놀란 상태셨던 어머니는 전화 통화를 하며 꾸꾸가 얼마나 사납게 굴었는지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자식같이 키우던 녀석에게 공격받은 것 자체가 큰 충격이셨던 듯했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꾸꾸를 데려가라’고 말씀하신 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이제 꾸꾸와 어머니의 인연은 여기까진가 보다’라며 체념했다. 그러나 다시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어머니는 다행히도 이전처럼 ‘엄마 집사’의 모습으로 돌아와 계셨다. 격리 후, 꾸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하셨다. 정황상 꾸꾸의 공격 대상은 어머니가 아니라 청소기였던 것 같았고, 무엇보다 꾸꾸가 격리당한 이후 풀이 죽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고 하셨다. 공격당한 당일은 사료 급여를 중지했지만,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을 떴을 때 영 서먹하게 구는 꾸꾸에게 북어트릿을 먹이며 단단히 타일렀다고도 하셨다. 꾸꾸 누나는 무슨 영문인지 잘 알 수가 없었지만, 당사자들끼리 잘 해결했다니 그저 다행일 따름이었다.  이렇듯 냉탕과 온탕을 반복하며 엄마 집사와 꾸꾸의 관계는 더 단단해졌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 꾸꾸 누나가 “꾸꾸를 데려가겠다”라고 하자 “꾸꾸를 데려가라는 건 그냥 해 본 소리였다. 내게서 꾸꾸를 뺏어갈 수는 없다. 꾸꾸와 나는 1+1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온 걸 보면, 확실하다. 어머니의 외로움을 막둥이 꾸꾸가 채워주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나는 어머니께 꾸꾸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지만, 어쩌면 꾸꾸에게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를 부탁해, 그리고 고양이에게 부탁해! 꾸꾸 누나고양이 꾸꾸와 함께 물고 물리는 일상을 보내며 글 쓰는 작가. 한겨레21이 2020년 주최한 제12회 ‘손바닥문학상’에서 ‘양손은 무겁게 마음은 가볍게’로 가작에 당선됐다. 꾸꾸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하나. ‘물어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바보야, 문제는…!’ 재택근무하던 냥집사의 깨달음

매일 뉴스를 보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백신 관련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어느덧 코로나19가 일상 속에 침투한지도 일 년이 넘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은 삶의 모습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고, 변화는 ‘뉴노멀’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우리 주변의 ‘뉴노멀’한 풍경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재택근무의 활성화다. 코로나19 집단 감염을 피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