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존재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의미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1952년 시인 김춘수가 발표한 시 ‘꽃’의 초반부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고개를 주억거릴 정도로 널리 사랑받은 구절이다. 시 전문을 통틀어 어디에도 ‘사랑’이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지만, 어떤 것을 인식하고 이름 붙이는 행위에 대한 묘사가 마치 사랑을 암시하는 듯해 대표적인 ‘사랑시’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길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고양이에게 ‘꾸꾸’라는 이름을 지어준 후, 나의 삶은 크게 변했다. 고양이 글 읽으러 들어왔는데, 갑작스럽게 펼쳐진 예상 밖의 ‘문학 시간’에 당황하신 독자분들도 계실 테니 시 얘기는 이쯤에서 접어두자. 그러니까 내가 굳이 시를 인용해 가면서까지 전달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 대상을 특별하게 인식하게 되는, 그리고 그렇게 만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특별한 인식은 곧 애착과, 애착은 넓게 봤을 때 사랑과 연결된다. 길에 사는 고양이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인식 체계 속 고양이의 위상이 같을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익명의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도 그러한데, 앞으로 평생 사랑해야 할 반려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건 정말로 의미가 각별할 터다.  구조 당시 꾸꾸의 모습, 구조 후에 붙여준 이름은 ‘꾸꾸’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꾸꾸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그 전에 이해를 돕고자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꾸꾸는 생후 3개월(추정) 때 서울 동대문구 모처에서 구조된 ‘스트리트’ 출신 고양이다. 2018년에 입양돼 만으로는 3년, 햇수로는 4년째 우리집에서 살고 있으니 이제 길에 대한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할 테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처음 발견됐을 당시에는 부모도 형제도 없이, 혼자 덜렁 오피스텔 입구 쓰레기통 위에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최종 입양자가 됐지만, 나라고 처음부터 꾸꾸에게 기꺼운 마음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고양이처럼 생긴 먼지덩어리 사진을 보고서 “부모가 데려갈 테니 제발 줍지 말라.”고 제일 열심히 만류했던 사람도 나였고, 구조자 친구가 이름을 붙여주려고 할 때 “키우지도 않을 건데 이름은 무슨 이름이냐. 비 그치면 그냥 풀어줘라.”고 매정하게 말했던 사람도 나였다. 아니, 세상에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다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나는 스마트폰 화면에 뜬 새까만 먼지덩어리 사진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게임 속 냥이 덕질하던 랜선 집사, ‘진짜 집사’로 거듭난.Ssul

반려동물을 안 키워 본 사람과 스마트폰에 게임이 단 하나도 깔려 있지 않은 사람. 요즘 시대에 둘을 비교하면 누가 더 적을까? 아마도 후자이지 않을까. 이제는 ’요즘’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무색할 정도로 연령 불문, 다양한 계층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전세계적 역병으로 인해 ‘비대면 시대’가 도래하면서 게임용 모니터, 콘솔 게임 등 게임 관련 주변기기 시장 역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현실을 살아내며 느끼는 팍팍함을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 위로 받는 모양새다. 꾸꾸 누나는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요즘 그 드물다는 ‘스마트폰에 게임이 단 하나도 깔려 있지 않은’ 그 사람이 바로 꾸꾸 누나다. 주변인들이 나누는 화제에 끼고 싶어서 게임과 친해지려고 여러 차례 시도해봤지만, 늘상 잘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게임 캐릭터를 조작해 열심히 사냥을 하고, 사냥감을 모아 돈으로 바꾸고, 바꾼 돈으로 게임 내에서 가질 수 있는 부동산을 구입하는 순간 진한 허무감에 빠져든다. 현실에서도 집세를 내려고 죽어라 일하는데, 놀자고 하는 게임에서도 ‘내 집 한 칸’ 구하자고 이렇게 삽질을 하고 있다니! 각종 스마트폰 게임들도 마찬가지였다. 잘 하다가도 흐름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거나, 랭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금세 ‘놀자고 하는 게임인데 왜 여기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 라는 생각에 울컥하여 게임을 삭제해 버리곤 했다.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꾸꾸 누나가 유일하게 오랫동안 했던 게임인 ‘심즈’ 그렇게 게임과 안 친한 꾸꾸 누나지만, 어쩐지 컴퓨터에서 지웠다가도 주기적으로 다시 설치하게 되는 게임이 있다. 바로 ‘심즈’ 시리즈다. 심즈는 사람들의 현실 생활을 ‘심’이라고 불리는 아바타를 이용해 유사하게 구현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사이버 인형놀이’ 라고 보면 된다. 아니, 고양이 얘기 하는 연재물에서 언제까지 게임 얘기만 할 거냐고? 이렇게까지 구구절절 게임 얘기를 한 이유가 다 있다. 이 심즈 속 세계에서는 반려동물, 그 중에서도 고양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그렇다. 꾸꾸 누나는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곤 했다. 게임은 ‘랜선집사’가 되기 위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심즈로 구현한 랜선 꾸꾸’ , 정말 똑같지 않은가? 아직 꾸꾸와 만나기 전, 반려동물의 온기가 고플 때마다 꾸꾸 누나는 ‘심즈’를 플레이했다. 심즈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다양한 품종의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고를 수 있으며, 반려동물의 성격 또한 입맛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당시에 나는 게임 속 고양이 아바타를 만들 때마다 언제나 ‘영리함’, ‘다정함’, ‘상냥함’ 특성을 가진 러시안 블루를 선택하곤 했다. 인간을 좋아하게끔 설정한 성격 덕분에 고양이는 언제나 나를 살갑게 따랐고, 나는 고양이를 폭 안고 마음껏 스킨십하며 현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생명의 온기를 마음껏 느끼곤 했다. 뒤치다꺼리도 즐거웠다. 나는 클릭만 하면 되고, 실제로 배변 상자를 치우는 것은 내 아바타였으니까. 물론 만지는 것도 내 아바타긴 했지만….

고양이, ‘영물’과 ‘요물’사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 중에서, 고양이만큼 속설과 미신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를 신적인 존재로 숭배했다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고양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일반적인 동물을 넘어 ‘영물’과 ‘요물’ 사이 그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다. ‘고양이는 귀신을 보고 쫓는다’는 속설부터 시작해서 ‘검은 고양이는 불길하다’(물론 글쓴이는